西遊記 6.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일체의 내나라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독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닐테니 그곳에 있는 동안 그들의 음식을 기꺼이 먹고 잘 지내는 일 또한
여행 못지않는 중요함 이리라...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식에는 커리가 들어 갔고 일체 국물이 없는 그야말로 궁물의 음식 이었다
오늘로 나흘째
딱히 내나라 음식이 그리운건 아니지만 멀쩡하게 잘 넘어가던 탈리가 목에 걸리고 짜파티에서는 밀가루 냄새가 난다
다행히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에는
간단한 빵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다소 인도스럽기는 해도 어쨌든 시리얼도 준비되어 있었다
엘로라로 가는 농촌 들녘은 대부분 목화밭 이거나 눈 닿는 곳 너머까지 아득히 넓은 밭에 사탕수수가 심겨져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의 목화밭과 잘 볶아진 커피 색깔의 노동자들
그리고 코끼리 위에 거만하게 올라 앉아 있는 점령군의 눈동자 만큼 서슬 퍼런 감시,
문득
이토록 큰 나라가 어이하여 영국 이라는 한 나라에 200년간 멱살을 잡혀 있었을까 하는 의문,
간디의 말대로 `나라안의 협조자들` 이 제일 큰 문제였을까? 그 협조는 또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것 이었을까?
가는 곳곳마다 도로를 새로이 만들거나 기존 도로를 확장하는 일로 분주하니 덩치 큰 이 나라도 곧 다릿심 좋게 일어서겠구나
하는 생각,
편도 1차선의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도로위에 차단기 하나뿐인 톨게이트?를 만들어 놓고
일일히 통행료를 받고 있는 이상한 나라,
그렇게 건조한 데칸고원 속에 자리잡고 있는 엘로라에 도착했다
엘로라는 힌두교 뿐만이 아니라 불교, 자이나교 등의 불상과 신상이 골고루 섞여 있는 곳으로
특히 바위산을 위에서 부터 통째로 파내려 가며 시바신이 살던 집의 형태를 조각해 낸 카일라샤 신전과
회랑의 둘레로 라마야나 이야기의 전체를 아주 섬세하게 조각을 했다.
신상의 곡선 표정 하나하나를 살펴 보다가 문득 생각 하기를
그 시대의 석공들은 다만 석공으로 보다는 한사람 한사람이 신화 학자이어야 했을거란 생각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그토록 장대하고 섬세한 신화 속 수많은 신들의 표정을 저토록 생생하게 조각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바위산 꼭대기 부터 입체적으로 파 들어간 카일라샤 신전 내부를 둘러보다가
기어이 산 위로 올라가 신전 전체를 조망하기도 했다
신전을 둘러보는 동안 바위벽 곳곳에 붙어 있는 커다란 석청들에
그저 군침만,
엘로라 사원 입장 때 부터 집요하게 매달리는 청년 하나가 있었다
천연 수정으로 만들었다는 조잡한 목걸이 하나를 들고 그 많은 석굴마다를 끈질기게 쫓아오며 계속 10달라를 반복했다
사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공연한 장난끼로 "30루피면 사겠다"는 길고 긴 씨름,
그런데 이게 먹혔다
세상에 말도 안돼... 우리 돈으로 환산 하자면 12.000원 달라는 물건을 600원쯤에 산 꼴이다
문제는 싸게 잘 샀다...가 아니라그 청년에게 미안해지는 마음 이었는데 이 친구 다시 손에 쥐일만큼의 크기에 원형으로 코끼리를 조각한 수제품을 들고 나타나서는 100루피만 내라는 얘기,
문제는 어제 아잔타 입구에서 같은 물건을 10달러에 산 최선배의 아연과 실색 뒤의 씨근과 벌떡...
S교수께서 미리 알려주신 흥정 방법은 대략 이랬다
최초에 부른 가격에서 0 하나를 뺀 숫자에 2를 곱하면 대충 적정 가격이 된다는 것,
그런데 C선배에게 최초 부른 가격은 100달러 였다는거다. 여기서 0 하나를 뺐으며 곱하기 2는 생략 했으므로 우얬든동 성공한 흥정이다... 하여 냉큼 사기는 했으나 용도가 무엇인지를 몰랐던 것,
그런데 오늘 본 믈건은 어제 아잔타에서 산 것과 같은 모양으로 향을 피울때 쓰는 것인데 어제 산 10달러짜리 물건에는 가운데 향을 꽂는 부품이 빠진 것 이었다. 결국 우리의 C선배께서는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만 10.000원을 더 주고 산 꼴이 되었다.
더더구나 S교수의 끈질긴 흥정으로 100루피짜리를 20루피에 샀으니... 이해 불가의 혼란스러움...
그 뒤로
누가 어떤 물건을 팔러 오든지 C선배께 이렇게 말했다
"저거 하나 사 줘요. 반쪽짜리껍데기를 10달러에 사라는 것도 아닌데...^^"
석굴이 많아 지역도 넓으니 둘러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당연히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기에 관리하는 친구에게 살짝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만
손가락 하나와 손가락 두개를 번갈아 치켜 드는데 의미를 알수 없으므로 그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대답 했더니만
제일 끝 석굴 뒤로 돌라가라는 몸짓,
그대로 돌아가보니 화장실은 보이지 않고 지린내가 진동하므로 그게 화장실인 줄 알겠더라
패키지도 아니고 가이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슬렁 걷다가 시원한 석굴 바닥에 앉아 쉬기도 하다가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원포토' 놀이도 하다가 하다가...보니 이 또한 시간이 늦어져 모두들 배가 고프다며 입구로 나온 시간이 오후 세시,
탈리와 도사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밥 먹은 시간보다 주방 둘러 보기에 음식 만드는 이와 떠든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돌아 오는 길
버려진듯 한산한 아우랑가바드 석굴을 둘러보고 호텔로 귀환, 솔라푸르행 야간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이동했다.
어둠속 긴 기다림 끝에 자정이 되어서야 침대 버스에 눕긴 했는데 이거 완전히 극기 훈련 수준이다.
버스가 침대 버스면 길바닥도 침대 버스에 맞는 수준이어야 하는건데 브레이크 없는 차가 자갈길을 달리는듯 우당탕 난리법석인데다가 누운 자리 바로 아래가 뒷바퀴 부분, 밤새 뼈마디가 맞부딪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곱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솔라푸르
이제 주가 바뀌고 사용하는 글자도 바뀌었다. 글자 아랫 부분이 동글 동글 하고도 위로 살짝 말려 올라간 모양새가 터번을 두른 인도 아저씨의 콧수염 같다.
솔라푸르에서 다시 비자푸르행 시외버스로 갈아 타야한다
화장실이 있음에도 여전히 담벼락 아래 흥건한 소변과 냄새, 기어이 그곳에 끼어 볼일을 봐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