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꿈둥지 2008. 9. 16. 09:47

 

 

 

 

 

#.

고향을 찾아 부모친지를 뵙고 인륜의 도리와 정을 나누고...

 

우리 모두 거대한 주술에 걸려 있는건 아닐까?

밀리고 밀리는 길 위에서의 끊임없는 인내

오늘까지 사람의 의식과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모든 문명적인 것 들에의 끊임없는 의심.

 

 

 

 

#.

연휴 끝날

산 넘어 매봉산에 들다

 

"입산금지" 팻말이 녹슨 채 버려져 있는 길

아무 곳에나 함부로 앉아서도 다래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고

얼키고 설키운 나뭇가지들을 헤쳐 두개의 계곡을 건널 쯤

 

 

 

 

#.

누가 살았었을까?

 

인위의 파헤침으로 얻은 터전이 아닌

맑은 물길 옆 넉넉한 평지로 만들어진 산자락에

부억 하나 방 하나의

버려지고 기울어진 오래 된 빈집 하나를 만났다

사람의 길로 보다는

산짐승들 왕래가 훨씬 빈번했을 길목에 누군가 곤비한 삭신을 빙의하여 한 생을 살았었나 보다

 

 

 

#.

여름 내

짙푸르렀던 나무들

스스로 하늘로 향하는 길을 열어 가을을 기다린다

유리조각 같은 저 빛을 온 몸으로 받아

그 빛깔처럼 온 몸을 태우고 난 뒤면 다시 겨울...

 

죽어져야

다시 살아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계곡물 도란 도란 알려주던 깊은 숲에서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을 버려 두고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