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國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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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네팔 유적을 둘러보는 동안 마음 정리 하기를
유적이야 세월 가고 사람 가도 유구할 일이니 제일 중요한 것이
낯선 나라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이국의 사람들과 손잡아 반가운 일...이겠다.
하여 어슬렁 마을 고샅을 둘러 보겠다고 나선 이른 시간,
따로 걷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다소 울퉁불퉁의 하수도 뚜껑 위를 걸어야겠는데
득도의 경지를 하루에 열서너번쯤 넘나드시는 개님들,
사람의 발길을 무심히 가로 막고 계신 통에 이리 저리 피해 걸어야 하는 이국의 나그네 홀로 개고생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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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모두 정설로만 만들어지는 것 일까?
인도를 향해 뱃길을 드나들던 포르투칼 항해 군단이 인도 턱밑에서 쉬어갈 곳을 찾았고
잠시 잠시 들려 가던 김에 아예 깔고 뭉개 버린 곳,
그곳이 재수없게도 스리랑카였던 것 이라는...것,
어쨌거나 기나긴 식민 세월 동안
주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베풀어진 은총(?)이 자기네 방식의 종교 였는데
오랜 시간 지나는 동안 적당히 토착 종교와 짬뽕이 되어
작게는 벽감 부터 집앞과 마을 가운데에 감실을 만들어 부처님도 시바신도 이렇게 모셔 놓고
그 앞에 너울거리는 향불과 꽃 향기,
이제 어쩔수 없이 스리랑카 예수님,
해안 도시인 콜롬보를 떠나 내륙인 아누라다푸라로 들어가는 동안
예수와 성모상들은 모두 불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식민 통치의 지역적 한계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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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풍선(風船),
무동력선 이지만 남루한 돛을 달고 인도양 푸른 바다 위를 미끌어지듯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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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3년쯤의 해에 신혼의 보금자리와 살림살이를 처분해 버린 뒤
8개월 전부터 지구 곳곳을 바람처럼 돌아 다니는 '훤' 부부
각각의 성인 "송"과 "성"에서 "시옷부부"라고 이름 했다는데 정작으로 더 궁금한 건 본인의 이름,
"어쩐 이름이 '훤'이냐?"고 물으니
"달이 훤한 밤에 태어났기..."때문 이라고 한다.
'휘영청'이라고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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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 과일을 파는 곳,
방금 혼나고 나온듯한 표정의 아저씨가 까고 있는 것은 야자나무와 비슷한 나무에 달리는
빈랑(檳榔)이라고 한다.
빈랑 열매를 베텔 잎에 싸서 껌 처럼 씹는 이나라 기호 식품이다.
정신을 맑게하고 졸음을 쫓는 효능이 있다고 하나 이를 씹고 나면 입안과 이가 진한 갈색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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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액을 졸이고 졸여서 만드는 야자사탕,
더운 날 힘든 길을 땀 흘려 걷다가 조따만한 야자사탕 하나를 입에 넣으면 다시 힘이 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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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 음식점,
천장에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해물 볶음밥 이라고 하는데 음식도 향신료도 대부분 짰고 어느 경우는 심하게 짜다.
"소금 조금만 넣어 주세요" 시원찮은 영어로 통 사정을 해봐도
여전한 짠맛,
더운 나라이기 때문 이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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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불교사 최초의 정사인 이수루무니아 정사는 Rock Temple(바위사원)로 불린다.
불교를 최초로 받아들인 데바 남피야 팃샤는 인도에서 건너 온 마힌다 장로로 부터 체계적으로 불법을 배우고자 이 사원을 건립했다.
이수루무니아는 북쪽을 뜻하는 살라와 승원을 뜻하는 아라마의 합성어로 아누다푸라의 북쪽에 있는 사원 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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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석(月石-Moon stone)이라고 부르며 사원과 각실의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월석은 스리랑카 만의 독특한 조각품이나 그 의미를 알수 없다. 그만큼 스리랑카 불교 유적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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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 내부에 불상을 조각한 뒤에 석굴 앞에는 나무를 이용한 전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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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석가모니께서는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 길상초 위에서 성도 하셨는데
그 보리수는 이미 오래 전 왕위에 오른 이교도인 아쇼카 왕에 의해 잘라 불태워져 버렸으나 그 중 두개의 보리수가 다시 싹을 틔웠고
이를보고 마음을 돌린 아쇼카 왕은 보리수를 보호하여 키우는 한편
딸인 샹가미타를 통해 어린 묘목을 스리랑카에 전하게 되었고 이렇게 자란 보리수 나무가 현존하는 스리마하의 보리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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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잎을 삶아 잎맥만 남게 한 뒤 건조하여
이런 저런 공예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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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출입을 위해서는 누구든지 맨발이어야 했는데
햇볕 쨍하고 날 뜨거우니 바닥은 불에 달군듯 뜨겁고 발바닥에 닿는 모래는 못 끝을 밟는듯 힘겨웠다.
맨발 참배객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인조잔디는 의도와 다르게 햇빛을 흠뻑 빨아 모으는 효과가 있어서 그 위에 올라서면
중국18무예 중 철사장 단련을 하는 것 처럼 발바닥이 뜨거웠다.
고행 보행,
이 나라에 도착한 첫날 모자를 잃어 버렸고
그리고 불에 데인 것 처럼 발바닥이 고장나서 밤마다 잠들기 전에 발바닥을 물파스로 적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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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수투파와 불상 그리고 정성스레 바쳐진 꽃들,
다고바를 시계 방향으로 탑돌이 한 뒤
보리수를 참배하고 바위속에 조성된 법당을 참배하는 동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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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파 앞에 서 있는 불상에서 어쩐지 헤라크레스의 모습이 보인다.
허긴 1~2세기 최초 불상 등장시의 간다라 양식은 그리스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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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하루를 걸어 걸어 도착한 라자라타 호텔
Raja는 왕,
rata는 마차이니 왕의 마차 안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