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낮은 자리 아주 작게,

햇꿈둥지 2022. 9. 12. 06:04

 

 

#.

아내가

도회 모임에 함께 가자고 했지만

홀로 산골에 남기로 한다.

 

#.

쉬고 잘 곳이 정해져 있음에도

어두울 무렵부터 시작되는

객창감 이거나 

미아의 고립감,

 

#.

정 깊은 이들의 눈빛과 손길을 잡고 있음에도

도대체 삼투되지 않는

가로등 밝은 도시의

밤,

 

#.

처방 불가의

산골병이다.

 

#.

명절이 끝난 날

모두들 우르르 모였다.

 

#.

소란한 틈새를 빠져나와

뜨락을 어지렁거리다 보니

밟고도 지나쳐 버릴 만큼 

낮게 엎드린 꽃들, 

 

#.

아주 낮은 자리에

아주 작은 모습으로 핀 꽃들은

향기조차 너무 작아서

세속의 코로는 맡을 수가 없었다.

 

#.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과 너무 큰 것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들과 너무 큰 소리들이 분명히 있을터이니

사람의 감각으로 정한 크기란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추녀 끝에 쉬어가는 바람에게 듣는다.

 

#.

지붕 낮은 산골 집들의 작은 마당이

윤기 나는 차들로 빼곡하더니

다시

도시로 향한 길들이 소란하다.

 

#.

산골 허공에 투명한 가을이 찰랑하고

나뭇잎들

잠시 동사가 되어 떨어지고 나면

오늘은 또

조금 더 시린 내일이 될 것,

 

#.

이제 추석은 가고

달도 이울어 가니,

 

#. 

가을 깊은 날부터

누군가를 함부로 그리워할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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