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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도회 모임에 함께 가자고 했지만
홀로 산골에 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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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잘 곳이 정해져 있음에도
어두울 무렵부터 시작되는
객창감 이거나
미아의 고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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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깊은 이들의 눈빛과 손길을 잡고 있음에도
도대체 삼투되지 않는
가로등 밝은 도시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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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 불가의
산골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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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끝난 날
모두들 우르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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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틈새를 빠져나와
뜨락을 어지렁거리다 보니
밟고도 지나쳐 버릴 만큼
낮게 엎드린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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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낮은 자리에
아주 작은 모습으로 핀 꽃들은
향기조차 너무 작아서
세속의 코로는 맡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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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과 너무 큰 것들,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아주 작은 소리들과 너무 큰 소리들이 분명히 있을터이니
사람의 감각으로 정한 크기란
아무 의미 없는 거라고
추녀 끝에 쉬어가는 바람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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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낮은 산골 집들의 작은 마당이
윤기 나는 차들로 빼곡하더니
다시
도시로 향한 길들이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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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허공에 투명한 가을이 찰랑하고
나뭇잎들
잠시 동사가 되어 떨어지고 나면
오늘은 또
조금 더 시린 내일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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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석은 가고
달도 이울어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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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깊은 날부터
누군가를 함부로 그리워할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