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그렇게 가을,

햇꿈둥지 2022. 8. 29. 06:46

 

#. 

아침 운동 길이

춥다.

 

#.

조금 늦었거니 

온몸에 통증이 생기도록 심은 배추 모종이

이제 뿌리를 내렸으려나...

올라가 보니

고라니 께서 하나도 남김없이 뽑아 먹었더라

 

#.

올 김장은

고라니 절여서 해야겠다.

 

#.

다시

뽑아 먹은 만큼의 배추 모종을 심은 뒤에

전기울타리를 손질해서 가동하고도

밭가에

밤새워 수다스러운 라디오를 켜 두기로 한다.

 

#.

해마다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수세적 노고와 허탈을 어찌해야 하나?

 

#.

인도 여행 후에

서로가 서로를 엮어 놓은 모임 하나,

이 여름 다 가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고

염불에 염불을 하다가

결국 내 집에서 만두 모임이 되었다.

 

#. 

막내인 숙 선생조차

흰머리가 성성하니

장차 어느 날 또

갠지스 강가에서 시바를 뵈올꼬?

 

#.

본격 시골살이 전

답사를 위해 들렸다는 초로의 여인네 둘,

이것도 궁금

저것도 의아하신데

그저 다른 것 다 그만두고

사람에 다치는 일 없었으면...

 

#.

"이웃을 잘 만나야 명당입니다"

돌아 선 길

등 뒤의 인사로 건네주었다

 

#.

밭 둘레 

집 둘레 풀 베기를 며칠 째,

팔꿈치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은

유기 아니면 폐기 상태이다.

 

#. 

집 주변의 풀베기 끝에

다시 벌초,

무심한 듯

예초기를 벗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

그렇게

종종거리다 보니

어느새 8월의 끝날들,

새벽 공기가 서늘도 하여

기어이

겨울 옷을 꺼내 입고는

구들방에 불 들이기,

 

#.

허공의 음영이

짙다.

 

#.

우체통 밑에 가만히 벗어 놓은 매미의 허물,

이 나이 되도록

허물 한번 벗지 못한 채

비움도 여물음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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