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었다
겨울이 되어도 눈 한번 푸짐하게 내리지 않고 회색의 거리마다 온통 헝클어진 바람만 도사려 있는 도시의 거리,
가끔 티? 화면으로 만나게 되는 산 가득한 눈...이 보고 싶다
이게 또 병이 되어서 주섬 주섬 배낭을 꾸렸다
그런 옆에서 아내는 처음으로 걱정스런 눈빛을 함께 꾸려 주었다
아이젠을 챙겨 주면서도 스패치를 챙겨 주면서도 도무지 의붓 자식 손에 소 고삐 잡혀 보내는 마음인지 이런저런 주의 사항들이 배낭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겨울 단독 산행이 처음 인지라
야영은 포기 하기로 했고 수렴동 대피소와 중청 대피소를 징검 다리 삼아 숙박문제를 해결하며 여름에 다녀 온 코스 그대로를 따라 가기로 해서
용대리에 이르러 보니
종아리 깊이까지 쌓여 있는 눈 눈 눈...
동네 마당가에서 눈 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노래도 부르고 눈도 뭉쳐 보며 일찌감치 수렴동 대피소엘 들었고 많지 않은 산꾼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었다
잠들 무렵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첫번째 실수,
눈을 떠 보니 창밖이 밝아 오고 있었다
늦잠을 잤구나
서둘러 짐을 챙기며 배낭 안에 준비해 둔 빵 두어개를 아침 식사로 대신한 후 대피소를 나와 봉정을 향해 걷기 시작 했는데
아무리 겨울 이래두 날 밝을 시간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을고?
어젯 저녘 대피소에 함께 묵은 산꾼들이 앞서 간 듯하니 바삐 쫓아 가면 만나겠거니...
대피소를 나설 때 남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은 두번째 실수,
쌓인 눈이 얼마나 대단한지 철사다리며 모든 인공 시설물이 눈 속에 묻혀 버렸음은 물론 앞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 걷지 않으면 사타구니가 걸려 걷지 못할 상황이 되는 지경
이렇게 앞 사람의 발자국만 밟아
앞서 갔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비짓땀을 흘려 가며 걷다 보니 봉정암 흐린 불빛을 만나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봉정 뜰 앞에서 잠시 짐을 내려 놓고 담배 한대를 피워 물었는데
"이 시간에 거 뉘여~"
"등산객 입니다"
"이 시간에 미쳤지 어디서 올라 온 게여? 내려 가는 게여?"
이 시간?
올라 온 게여 내려 가는 게여?
놀라 시계를 꺼내 보니 새? 네시가 조금 지난 시간 이었고 사람의 시간을 확인 하고 부터 지나 온 그 긴 길에 대한 무서움이 한꺼번에 몰아 닥쳤다
서둘고 서툰 탓도 있겠지만
문제는 달이 밝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쌓여 있는 하얀 눈들,
올라오는 동안 내 스스로 단 한번도 밤 길 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 할 만큼 완벽하게 시야 확보가 되었었다
달빛과 눈의 반사광과 그리고 개뿔딱지도 모르는 초행 겨울 산꾼이 빚어낸 끝내 주는 결론,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부터는 무서움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고 하는 수 없이 봉정암 공양보살님이 새? 공양을 준비하는 부엌 아궁이 앞에서 한 시간 가량을 주저 앉아 있어야 했다
"내가 말여 살 만큼 산 나이에도 그 길을 밤에 걸어 본 일이 없어 설악산이 을매나 무서운 산 인줄 알어?~"
공양을 준비하는 동안 아주 절제된 말씀만 하시는 중에도
반은 철딱서니 없는 산꾼에 대한 지청구 였고 반은 설악에 대한 경고의 말씀...들 이었다
소청을 올라 서면서 부터는 오름 길 이었음 에도 오히려 편했다
등 전체를 아주 넓게 밀어 주는듯 한 겨울 바람,
눈이 두껍게 쌓여 있고 발에는 아이젠을 끼웠음에도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온통
꽁 꽁 아주 두껍게 얼어 붙어 있었다
바람에 밀려 오른 대청봉에 누워 마른 목을 축일겸 수통을 꺼내 보니 완전히 얼음사탕,한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프라스틱 통에 담아 간 고량주를 눈 밭에 누워 마시고 나니
뱃속 전체를 뒤 흔드는 어지럽고 황홀한 전율,
하늘을 뒤 흔들듯 지나가는 바람, 구름, 그리고 아주 투명한 추위...
너무 추워서
너무 일러서
아무도 같이 있지 않은 대청의 가슴팍에 안겨 그윽한 술타령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