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집 밭들이
갈아지고
비닐이 씌워지고
무엇인가가 심어지는...동안
우리집 너른 밭들은
갈아지지도 않고
비닐이 씌워지지도 않고
무언가가 심어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비닐을 씌우고 사람의 의도대로 심겨진 것들을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서 가꾸어내야 하는가?
온 들에서
냉이와
원추리와
쑥과
민들레와...이 봄 푸르게 잎 펼치기 시작한 모든 것 들을,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자랄 줄 아는 모든 것들을 뜯어서 무쳐 먹고 삶아 먹고 생으로 먹어치우면 되는 일 인데...
그리하여
농사는 집어 치우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완벽한 날나리 자연농이 된 것 입니다
#.
마당가를 어지렁 거리며 나물을 캐는 중에
낯 모르는 할머니 한분이 개들의 요란한 소리를 뚫고 마당에 드셨습니다
"민들레를 캐러 왔는데 호맹이가 없어 불편하다" 시더니 내 손에 들린 호미를 무조건 내 놓으라십니다
할머니 이거 드리면 난 뭘로 캐요?
젊은 사람은 손으로 캐도 할 수 있어
내두 젊었을 때는 별거 다 해 봤어
산전 수전 공중전 까지 안해 본게 없어
에이 할머니 요즘 전쟁은 전자전으루 해요
전자전이 뭬여?
난 감자전은 많이 해 봤어
#.
배론에는 꽃송이 같은 사람들이
꽃송이 처럼 많이 몰려서
봄 햇살 아래를 흐느적 흐느적 밀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학당 뒷켠에 있는 옹기 가마 주위에는
이십여개쯤의 질항아리들이 엎어져 있는데
조카 아이들 앞에서 장난끼가 발동하여
"이곳에서 만들던 항아리는 다른데서 만들던 것과 아주 특별한 차이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변에 모여 있던 몇몇 분들이
배론 전담 가이드인 줄 알았는지 모두 모여 귀를 기울이십니다
여전히 엄숙한 내 설명
"밖에 항아리는 위에 항아리 주둥이가 있고 아래에 바닥이 있는데 반해 이 항아리는 위에 바닥이 있고 아래에 주둥이가 있다"
그 중에 제법 관찰력 있는 이가 하나 있어 반문 하기를
"그거 엎어 놔서 그렁거 아니래유?"
그렁가?
써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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