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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것 같은 산골의 하루 하루가
바람처럼 흘러 어느새 2월도 아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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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동안
승홍수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을
다시 묵향에 적시기로 하여
묵혀 두었던 붓과 종이 위의 먼지를 털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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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한 일상은 쉽게 깨어질 뿐더러
별것 아닌 일 하나가 새로이 생기면
괜스레 허둥대게 되는 백수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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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은 충분히 게을렀으므로
날짜도 요일도 무시한 채
동면하는 짐승처럼 산중 누옥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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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일주일은
일요일 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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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한 뒤에 쉬는 것이 아니라
쉬어야 일 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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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는 성서의 말씀
먹지 않았거든 일 하지 말라...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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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추위에 강 추위 까지
계속되던 혹한의 날씨가 제풀에 지쳐 변덕처럼 포근했던 한낮,
뒷산 오름길은 살짝 덥기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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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겨울 추위에
몸도 마음도 순치 되었던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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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산속 깊은 곳 에서는
혹독하게 추웠던 허공을 향해
화해처럼 손 내민 복수초가 피고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