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곰팡이 동거,

햇꿈둥지 2021. 1. 26. 05:53

 

 

#.

딸아이 대학 다닐 때였는지

어찌어찌한 연유로

아이가 직접 차린

점심 한 끼를 얻어먹은 일이 있었다.

 

#.

여린 손으로 쪼물딱 차려 낸

제법 밥상같은,

 

#.

결혼한 여자가 음식을 만드는 일은

집안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

 

#.

가족의 건강은

주방 조리 시간의 길이와 같다.

 

#.

음식에 관한 책임이

공장 굴뚝으로 옮겨져 버린 시대

인스턴트와 레토르트라는 이름으로

요란하게 진화했으나,

 

#.

이력과 알맹이를 확신할 수 없이

포장만 뺀도롬한 식품들이 넘쳐나는 시대,

 

#.

티비마다

볼이 미어터지는 먹방에 매달려서

이런저런 음식 전문가가 넘쳐남에도

여전히 신뢰를 상실한 미혹의 시대,

 

#.

산속에 들어

진정한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

온통의 자급은 아닐지라도

자족한 삶을 살아야겠다...

 

#.

그리하여

가난한 밥상 위 거친 음식들이거니

공손하게 차려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 일,

 

#.

밖의 것들을 사기 전에

손수 해결을 위해 궁리하고 노력한다.

 

#.

그렇게

기르고 거두어

장이 되기까지의 산골 일상,

 

#.

구들방 아랫목에

메주를 끌어안고 동거하기를 근 50여 일

내 몸 어딘가에도 누룩곰팡이가 필 것 같을 때쯤

 

#.

창문 활짝 열어

고단한 동거를 정리하던 날,

 

#.

산골 뜨락이

제법 봄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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