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밭에 거름이 뿌려지고
깊은 겨울 잠에 빠져 있던 농기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갈색의 흙을 갈아 엎고 있었다
드디어
겨울이 끝난 것 같다
#.
간장이 떨어졌다고
종구씨 부부가 들이 닥쳤다
간장은 구실이고
소찬박주의 술상 하나 놓고
저 우에 밭에는 무얼 심고 비닐하우스는 어찌 어찌 하고 아랫 밭에는 무얼 싱구고...
아직도 겨울을 떨쳐 내지 못한 푸석한 땅에서
배추와 무우와 고추와 야콘들이 쏟아져 나오는 술상머리,
술과 안주나 심지...
#.
도대체 이노무 기계 이름은
스스로 관리를 잘 받아야 함으로 이름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
지난 해 겨우
밭 두어 이랑쯤을 갈다가 까무러친 이 후로
가을 지나 겨울 지났으니 아무리 용을 써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해 봐도 묵묵부답...
겨우 겨우
이곳 저곳을 손질해서 심장 펄떡 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니
조립은 무어 이리 복잡한지
한 여름 버금가게 땀을 쏟은 뒤에야 관리기로의 기능을 회복한 이놈,
쎌푸로 조립을 했다는 만족감쯤으로
밭갈기야 되든 말든
좋다...
#.
한솔이네 밭은 이미 곱게도 갈아진 뒤 비닐이 씌워졌고
저 아래 이씨 영감님 댁은 벌써 감자를 심었고
마을 가운데 박씨 영감님네 황소는 비탈 밭을 갈고 있고
이장은 마늘 밭을 손질하고 있고
이장 마누라는 굵은 팔뚝을 걷어 부친 채 거름을 나르고 있고
새들은 이곳 저곳 택지 선정에 분주하고
하늘은 맘껏 봄빛인데
저녁 식탁에서의 마누라 채근,
"속리산 어디어디에 폼 나는 곳 있다 하니 우리 언제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