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노을 빛 가을,

햇꿈둥지 2021. 9. 21. 10:36

 

 

#.

어제 저녁 서산 노을이 그리도 서럽게 붉더니만

그 빛 모두 대추에 주고 가셨는지

 

#.

빗 속의 대추가

달게 붉었다.

 

#.

갈 곳도

맞을 이도 없으니

 

#.

마을 온통

대동 고요,

 

#.

차례상에

성능 좋은 KF94 마스크 한 다발 올려놓고,

 

#.

유독 대추 탐이 많은 아내는

대추나무 아래 반경 1미터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물오물 대추 먹는 중,

 

#.

추녀 끝에 나앉아

허튼 시간의 길이로 자란 손톱을 자른다

세상 불의에 조차 무기가 되지 못하는

퇴화의 잔재들,

 

#.

그럭저럭 고이 다듬어

비 젖은 누옥에 앉아

모처럼 아내와 함께

기타 치고 노래해야겠다.

 

#.

퐁당퐁당 돌도 던져 보고

섬 그늘로 굴 따러 간 엄마도 불러 보고

그러다가

빗소리에 취 하면은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들어도 좋고,

 

#.

해 지면

환청 같은 벌레 소리들

비로소

산 속에 몸 뉘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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