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저녁 서산 노을이 그리도 서럽게 붉더니만
그 빛 모두 대추에 주고 가셨는지
#.
빗 속의 대추가
달게 붉었다.
#.
갈 곳도
맞을 이도 없으니
#.
마을 온통
대동 고요,
#.
차례상에
성능 좋은 KF94 마스크 한 다발 올려놓고,
#.
유독 대추 탐이 많은 아내는
대추나무 아래 반경 1미터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물오물 대추 먹는 중,
#.
추녀 끝에 나앉아
허튼 시간의 길이로 자란 손톱을 자른다
세상 불의에 조차 무기가 되지 못하는
퇴화의 잔재들,
#.
그럭저럭 고이 다듬어
비 젖은 누옥에 앉아
모처럼 아내와 함께
기타 치고 노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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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퐁당 돌도 던져 보고
섬 그늘로 굴 따러 간 엄마도 불러 보고
그러다가
빗소리에 취 하면은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들어도 좋고,
#.
해 지면
환청 같은 벌레 소리들
비로소
산 속에 몸 뉘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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