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소토골 일기

오월 냉면은 서울로 간다

햇꿈둥지 2023. 5. 20. 11:24

 

#.
공작이 꼬리깃을 펴는 일은 목숨을 거는 행위이다.
구애를 위한 그 짧은 시간 동안
포식자가 나타나도 즉각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우체통에 새끼를 키우고 있는 작은 딱새는
알이었을 때는 문이 열리면 호로록~  날아갔지만
부화한 뒤에는 온몸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
우주보다 더 큰
사랑과 모성 본능,

#.
자연은
모든 잉간의 교과서이다.

#.
감자를 심은 이후
다시
고추를 심고 옥수수를 심고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고 심고... 하다가
저문 강물에 삽을 씻듯
이제 어둠 속으로 흐르는 샘물에 발을 닦고
집으로 들던 시간,

#.
재채기 한 열 번쯤,
그리고 
오한과 미열, 
콧물과 기침,
온통의 고뿔 증세를 일거에 동원하여
한 밤의 꿈길이 제법 울퉁불퉁하였으므로
해열제와 진통제를 한 사발쯤 마셨으나

#.
결국 병원행,
정든 의사는 눈치 없이 친절하였다.

#.
진통제 1인분에
소염제와 거담제와 항비염제를 두루 섞어
한 사발 푹 달여 마신 후에
지구 도는 것이 눈에 보이던 증세가 진정되었다.

#.
이 계절의 가장 낮은 자리로 맺힌 이슬에
내 몸의 가장 높은 이마를 비비며 인사하던 아침,

#.
하매 뻐꾸기 울고···

#.
백당나무 흰꽃이 무더기로 피느라고
밤새
창밖이 그리도 도란도란 하였고녀~

#.
서울로 옷감을 사러 간다는 아내는
냉장고 구석을 비집어 다시 구석을 장만하여
냉면 국물과 고운 고명과 달걀을 삶아
빼곡히 짱박아 놓은 뒤에 
정작 냉면사리는
자기 가방에 담아 서울로 가 버렸으므로

#.
냉면은
개뿔,

#.
허기진 눈으로
서울을 바라보며
사리를 한 하노라~

#.
옆댕이 코딱지 도시에 사는 동무는
홀로 벌통에 매달려 있다고 하니
막걸리 한통 사 들고
씨레빠 차림으로 길 나서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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