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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잠들어
세 번의 마디로 깨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 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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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의 세시쯤이었고
창가의 감자, 제주의 하르방
그리고 어린양 한 마리가
낮은 스탠드 불빛에 선하품을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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器物조차
氣物이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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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부터
노자와 장자와 성서와 주역과 금강경이 모두
한 목소리로 같은 곳을 향해 가자는데
사람들이 저 마다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옳네
왈가왈부하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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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벽에 잠 깨어 두 시간여,
이제
동창이 밝을 모양이니
책 덮고 쌀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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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가 남겨 둔 배추 아홉포기를 거두었다.
300 모종을 심어 아홉을 거두었으니
황송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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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같으면
밭에 버려졌을 볼품새 없는 배추 마져 기꺼이 거두었으니
이 또한 고라니 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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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새로 들어온 이가
집 비운 사이 떡 한 접시를 두고 갔길래
무성의한 답례 물건 하나 들고 잠시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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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만나는 사람들 마다 자동 반복되었을 것 같은
지난 도시살이의 얘기들,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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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가 다소 생뚱맞게 물었다
- 종교가 있나요?
- 한 동안 학교에 빠져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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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의 시간을
그저
가만히 듣고
빙그레 웃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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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구름과
바람에게서
고요함을 배웠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