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바람 풍경소리

풍경소리

고라니 배추,

햇꿈둥지 2022. 11. 26. 18:00

 

#.

초저녁에 잠들어

세 번의 마디로 깨기를 반복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 난 시간,

#.

미명의 세시쯤이었고

창가의 감자, 제주의 하르방

그리고 어린양 한 마리가

낮은 스탠드 불빛에 선하품을 쏟아낸다.

#.

器物조차

氣物이 되는 시간이다.

#.

논어부터

노자와 장자와 성서와 주역과 금강경이 모두

한 목소리로 같은 곳을 향해 가자는데

사람들이 저 마다

이 길이 맞네

저 길이 옳네

왈가왈부하고 있을 뿐,

#. 

그렇게

새벽에 잠 깨어 두 시간여,

이제

동창이 밝을 모양이니

책 덮고 쌀 씻어야겠다.

#.

고라니가 남겨 둔 배추 아홉포기를 거두었다.

300 모종을 심어 아홉을 거두었으니

황송하기 그지 없다.

#. 

평상시 같으면 

밭에 버려졌을 볼품새 없는 배추 마져 기꺼이 거두었으니

이 또한 고라니 은덕이다.

#.

마을에 새로 들어온 이가

집 비운 사이 떡 한 접시를 두고 갔길래

무성의한 답례 물건 하나 들고 잠시 방문,

#.

새로이 만나는 사람들 마다 자동 반복되었을 것 같은

지난 도시살이의 얘기들, 사연들,

#.

그니가 다소 생뚱맞게 물었다

- 종교가 있나요?

- 한 동안 학교에 빠져 있었지요

#.

한 시간여의 시간을

그저

가만히 듣고

빙그레 웃어주기,

#.

나무와 

구름과

바람에게서

고요함을 배웠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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